INTJ의 우울증(INTJ가 생각하는 죽음, INTJ 침묵, INTJ 감정기복)
INTJ의 우울증
모든 INTJ들이 나와 같이 우울증을 경험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여러 MBTI 유형 중에서 가장 우울해지기 쉬운 성격을 고르라면 INTJ일 것 같다.
INTJ들은 일단 인간관계가 깊고 좁기 때문에 주변에 사람들을 많이 두지 않는다. 근데 그렇게 좁은 인간관계 중에서도 본인의 힘든 마음을 나눌 사람이 마땅치 않다. 사람을 잘 믿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대부분은 혼자 고민하고, 혼자 힘들어하다가,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아주 오래 전 나는 어떠한 충격으로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는 세상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은 이제 망했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을 것이고, 사람들은 나를 루저라고 생각할 것이 뻔했다. 그렇게 나는 타인을 신경쓰지 않는 척 하면서도 지나치게 의식하며 살아왔다.
학교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옥상으로 올라가 죽으려고 했다. 근데 쉬는시간이 되자 몇몇 나와 친구들이 몰려와서 나를 위로해 주었고, 한 친구는 장문의 쪽지를 써서 내 마음을 위로해줬다. 그때 친구들의 위로와 쪽지가 없었다면 나는 정말 죽음을 선택했을 것 같다.
내가 극단적인 생각을 했다는 건 소수의 친구 몇명만 알고 있다. 가족들은 내가 죽음을 생각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내가 힘든 일을 겪고 방 안에 이불을 쓰며 울고 있을 때, 가족들은 내 힘든 마음보다도 그냥 망했다는 거에 더 집중을 했다. 키워주신 은혜에는 감사하지만, 내가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때 가족은 내게 큰 도움을 주진 못했다. 그 점이 참 섭섭했다. 가장 오래 같이 살았고, 피가 섞인 가족인데도 오히려 내가 힘들 때를 잘 알아주지 못했다. 근데 이건 가족들도 같은 마음 아니었을까? 가족들도 힘든 일이 있을 때 서로 터놓고 얘기하진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 뒤로 나는 힘든 일이 있어도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게 되었다. 진로 선택 또한 가족들과 상의하지 않고 나 스스로 결정했다. 내가 스스로 결정한 사항에 가족은 늘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며 내 선택이 잘못된거라고 말할 때도 있었다.
그동안 나는 사회에서 바라는, 부모님이 바라는 모범생으로 살아왔지만, 사실은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할 말은 다하는 비관주의자다.
그러나, 그렇게 할말 다 하고 살면 내가 더 힘들어지는 경우가 생기고, 사회생활을 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침묵하는 것이다.
침묵은 입을 열어 비난을 털어내는 것보다 무섭다.
그래서 INTJ들은 화가 나도 분을 삭히면서 마일리지처럼 하나씩 쌓아둔다. 그리고 막판에 화산처럼 폭발한다.
INTJ들은 감정기복도 심하다.
때로는 엄청 기분이 좋았다가도, 갑자기 우울해진다. 그 이유는 모르겠다. 아주 행복하고 즐겁다가도 어느순간에 이렇게 사는게 힘들고 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두번 째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일이 찾아왔을 때도 그랬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당당하게 행동했었는데 속에서는 많이 곪아 있었다. 학교에서 심리상담을 받았고, 리 검사에서 자살충동지수가 많이 높게 나왔다고 한다. 처음 보는 심리상담사 앞에서 엄청난 눈물을 흘리며 각티슈에 있는 휴지를 거의 다 뽑아내며 눈물을 닦았다.
나는 그런 경험을 처음 해봤다. 가족들은 아직도 내가 심리상담 결과 자살충동지수가 높게 나왔는지도 모르고, 그 당시에 내가 그렇게 많이 울었다는 것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그 지독한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매일 명상을 하고, 긍정적인 책을 읽고, 꾸준히 운동을 했고, 연애를 하면서 사람을 믿고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년이 지나 지금의 나는 꽤나 건강한 정신을 갖게 되었다. 주변에서는 나를 밝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본다. 물론 아직도 가끔 침울해지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예전보다 회복력이 빨라졌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어린 친구들의 기사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이번 가양대교에서 실종된 한 20대 여성의 유서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에 가양역에서 실종이 되었을 땐, 이 분이 범죄에 연루된 것으로 생각했었다. 평범하게 일상을 지내던 대학생이 갑자기 그렇게 실종될 일은 범죄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근데 실종된 분의 블로그 글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가양역서 실종된 20대 여성 유서 발견
가양대교 위 마지막 목격 서울 지하철 9호선 가양역 근처에서 실종된 김가을(24)씨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포착된 강서구 가양대교 남단의 지난 6일 모습. 뉴스1 서울 지하철 9호선 가양역 인근에서
n.news.naver.com
제목은 2020년 일기라고 되어있고, 실제 글을 2021년에 올라왔다. 나는 이 글을 보고 단순 실종사건이 아님을 직감했다. 가양대교에서 서있던 그날, 어쩌면 실종자는 그동안 글로 써오고 생각만 해왔던 일들을 충동적으로 실행에 옮기지 않았을까. 저 선택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슬픔과, 정신적 고통을 느껴왔을까를 생각하니 지난 날 내가 겪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가 고통스러워졌다.
이런 일을 떠올리고 기록하는 것이 INTJ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겉으로는 냉정해보이지만, 사실은 정신적으로 약한 면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누군가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하면 나는 하루종일 집중하지 못하고, 관련 기사만 찾아본다. 이 글을 쓰기까지 1개월 이상을 고민했다. 임시저장함에 넣어두었다가 용기내서 다시 쓰는 글이다.
감정은 전이가 쉽다. 특히 우울한 감정일수록 더욱 더 그렇다. 그럼에도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다.
혹시라도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나 INTJ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쉽게 삶을 포기하지 말았으면 한다.
인생에서 큰 고비가 찾아올 때마다 나는 늘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늘 그 뒤엔 새로운 시작이 있었다.
그때의 고통스러운 실패와 경험들이 쌓여 나는 더 단단해졌고, 이제는 극복하는 에너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지금은 감정적으로 우울해지거나 감정기복이 심해질 때, '잠깐, 멈춰. 지금 넌 너무 감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이 생각은 굉장히 충동적이야. 잠시 휴식을 갖고 다시 생각해보자. 분명 해결책이 있어' 이렇게 나 자신에게 얘기한다.
나는 지금도 살기 위해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명상을 하고, 일기를 쓰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 인생이 너무 우울하다면 잠시 눈을 감고 진정 내가 무엇을 했을 때 나아질 수 있을지, 행복해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소중한 생명이고, 인생이니까.